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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없는 성관계는 성폭행이다" 스웨덴 개정 성폭력법 추진
심윤지 기자 입력 2017.12.21 17:56 수정 2017.12.21 19:49
[경향신문] 스웨덴 정부가 성폭력 기소 요건을 완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표했다고 20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명시적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성관계는 모두 강간으로 간주하겠다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개정 형법에는 ‘의제 강간(negligent rape)’과 ‘의제 성폭행(negligent sexual assault)’도 범죄로 규정된다. 그동안은 원치 않는 성관계라 해도 폭력이나 강압이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해 강간죄로 기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피해자들은 성관계 전 동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만 입증하면 된다. 예컨대 술에 만취해 잠이 든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상대방이 명시적 동의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므로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으로 강간의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넘어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스테판 뢰벤 총리는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관계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자발적이지 않다면 불법이며, 확신할 수 없다면 삼가야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2014년 집권 이후부터 관련 정책을 추진해오던 그는 이번 법률안을 “역사적 개혁(historical reform)”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유죄 판결이 실제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회의론을 펼쳤다. 이에 대해 뢰벤 총리는 “사회가 당신의 편에 서있다는걸 피해자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7월1일자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개정안은 22일경 의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스테판 뢰벤 총리가 17일(현지시간) 이사벨라 뢰빈 부총리, 모건 요한슨 사법부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규정하는 개정 법률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VT 홈페이지 캡처 .
SVT를 비롯한 스웨덴 현지 언론은 이번 개혁안이 통과된 배경에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 캠페인(#MeToo)이 있다고 봤다.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체의 민감도가 올라가면서, 제도적인 개혁도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스웨덴 범죄예방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한달간 접수된 성희롱 신고는 868건이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33%가 증가한 수치다. 강간 신고도 전년 동월 대비 16% 늘었다. 리사 왈린 조사관은 SVT와의 인터뷰에서 “10월 미투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로 확연한 증가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성폭력 관련 법률을 강화하는 추세다. 프랑스는 2018년부터 거리에서 발생한 성희롱에 대해 즉시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다. 핀란드는 2016년 이미 유사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각에서는 성희롱·추행을 불법 주차 수준의 범죄로 격하시켰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성범죄에 대한 신속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많은 유럽 국가들은 수년간 성폭력 법률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미투 캠페인의 확산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동의 없는 성관계는 불법’이라는 인식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2016년 유럽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유럽 남성의 27%가 “특정 상황에서는 동의없는 성관계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거나, 가해자에게 성적 호감이 있었던 경우 등이다. 지역별로도 편차가 있었다. 벨기에에서는 응답자의 40%가 동의 없는 성관계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지만, 네덜란드는 15%에 불과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55% 이상으로 가장 높았고,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 15% 미만으로 가장 낮았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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