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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재판 첫 기준 만든 대법원의 '위드유'.."피해자 살펴라"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대법원이 여학생 성희롱을 사유로 해임된 대학교수를 복직시키라고 판단한 2심 판결을 깨고 다시 하라고 돌려보내면서 성범죄 관련 소송의 판단 기준을 처음 제시해 주목된다.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 와 이에 연대하는 '위드유' 운동의 물결이 거센 가운데 대법원이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위드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대법원이 제시한 판단 기준은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법원의 성 관념부터 바로잡자는 제안으로 시작한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 차원에서 사건을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인지 감수성은 오랜 고정관념이나 남성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올바른 성 관념을 갖추는 것을 뜻한다.
대법원은 판사들이 피해자들의 진술이 믿을 만한지를 따질 때 성범죄의 특수성, 특히 피해자의 처지와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피해 사실 진술을 꺼리는 점이나 가해자 및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 안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진술은 그 의도를 쉽게 오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2차 피해가 생길까 봐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지 않거나 가해자의 범행이 공론화된 후에야 피해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는 점도 유념하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피해자가 처해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 진술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위배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지적은 판사들마저도 성문제가 얽힌 사건을 두고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판결을 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향후 관련 재판의 지침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이런 판단 기준을 대학교수 A씨의 해임처분 취소소송에 적용했다.
이 사건은 제자들을 성희롱했다는 사유로 해임된 전직 대학교수가 해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이다. 1심은 징계사유가 사실로 인정되므로 해임이 정당하다고 한 반면 2심은 피해자인 제자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해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전날 2심 판결을 깨고 재판을 다시 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2심 법원의 판단을 문제 삼았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이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기에 앞서 사건을 바라보는 2심 법원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법원이 2심의 시각을 지적한 것은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 때문이다. 2심은 피해자가 성희롱 등을 당한 뒤에도 A 교수의 수업을 듣고 좋은 강의평가를 줬던 점, 사건이 발생한 지 한참 뒤에 피해 사실을 드러낸 점 등에 비춰 실제로 피해자가 진술한 내용대로의 피해를 봤는지 믿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을 충분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단정했다고 판단했다.
성범죄의 피해자이지만 여성이자 학생의 신분으로서, 과연 많은 권한을 지닌 교수의 수업을 무작정 수강하지 않고 나쁜 평가를 준다거나 사건 발생 직후에 피해 사실을 고발할 처지가 됐는지를 깊이 살펴보지 않았다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믿을 만한지를 따지는 것처럼 성범죄 관련 사건을 다루면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듯한 2심 재판부의 시각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성희롱 소송의 심리와 증거판단의 법리를 제시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어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를 따질 때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심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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