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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여성에게 있다 - 월간기독교 '만나싶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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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08
내용
월간기독교 '만나싶습니다' 씨알여성회 곽라분이 대표

이성숙 (기사입력: 2009/09/03 14:51)


“여성이야말로 씨알 중의 씨알이다.” “여성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곽라분이 선생. 2002년 한성신학대학 교수직을 조기 퇴임하고 경기도 광주로 가서 씨알여성회를 설립했다. 교수 재직 시절, 성남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강의를 갔다가 광주에는 여성을 위한 단체가 없어 인근 성남으로 상담 받으러 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상담소와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억압받는 여성들의 대모 역할을 해온 선생은 이태 전부터는 결혼이민자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다.
대학 시절 책으로 먼저 만난 함석헌 선생은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와 신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 것. 지금도 씨알여성회 활동 외에 씨알기념사업회 실행위원, 평화의마을(사회복지법인) 이사, 여신학자협의회 실행위원, 여성교회 신학교육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생을 경기도 광주로 찾아가 만났다.


스승들과의 만남
그가 여성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였다. 이화여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강원도 고성으로 들어가 3년 동안 농촌계몽운동에 몸담았다. 이화여대와 자매결연한 강원도 간성면은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며 방학을 온전히 보낸 곳이기도 하다. 60년대 한국 농촌은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 대학생들 사이에서 농촌계몽운동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이광수의 소설 <흙>은 그가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곳에서 주일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신학의 필요성을 느낄 즈음, 함석헌 선생을 만났다. 학창시절 잡지 <사상계>와 함 선생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통해 이미 함 선생의 글을 접하고 흠모해오던 터라 대면해서 만나는 것은 크나큰 축복으로 여겨졌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되었다.
문동환 목사와의 만남은 그를 한신대로 이끌었다. 농촌계몽운동에 몸담고 있던 시절 이화여대에서 교육자대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문동환 목사를 처음 보았다. 문 목사의 강의에 매료되어 문 목사가 재직하고 있던 한신대에 가기로 결심한 것. 한신대에서 공부하면서 기존의 보수신앙에 일대 전기를 맞았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만 부르짖어서는 안 되며, 역사 속에서 예수를 찾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현실에서 예수를 만나야 한다는 것. 한신대에서 만난 스승들의 가르침은 이후 그의 생에 지렛대가 되었다. 하늘만 쳐다보며 ‘거룩’을 부르짖는 신앙보다 ‘지금 여기서’의 신앙을 강조한 안병무 박사는, 속된 것을 무시하거나 세상을 몹쓸 것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주셨다. 함석헌 선생이나 안병무 박사는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내일이 보인다.”고 강조하셨다.
“내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신앙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어요. 초대총장이셨던 장공 김재준 박사의 영향도 컸지요.”


인권·여성 운동에 몸담다
“씨알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함 선생의 가르침은 그를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으로 이끌었다. 한신대를 졸업하고 은혜원(사회복지기관)에 근무하면서 시립부녀보호소에 파견을 나갔다. 그곳은 매춘여성을 보호 선도하는 곳이었다.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창녀, 윤락녀라는 말이 성차별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매매춘을 근절한다며 6,70명씩 데려다가 교육시키곤 했다. 밑바닥에서 여성 문제를 경험한 것이다.
이우정 교수의 권유로 72년 미국으로 건너가 여성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교육학 석사와 신학 석사, 신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미국에 거주하던 한인들도 민주화운동에 가세했다. 인권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목요기도회가 한창일 때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워싱턴에서도 목요기도회를 했다.
워싱턴에 한국의 민주인사들이 모여들면서 문동환 목사를 담임목사로 워싱턴 한인수도교회가 설립되었다. 한국에서의 인연으로 그는 수도교회에서 전도사 역할을 감당했다. 당시 수도교회는 정치 교회라는 별명이 붙었고 수도교회 사람들은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그는 미국에 있으면서 1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으로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영주권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었던 것.
“87년에 함 선생님이 많이 편찮았어요. 꼭 나가서 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들어왔다가 89년 3월에 아주 돌아왔는데, 그해 2월에 함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그게 평생 한으로 남아 있어요.”
89년에 귀국하여 한 학기 강의를 하고 학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학교 비리 문제로 학생들이 소요를 일으켰을 때 학생 편에 섰다는 이유였다. 가처분신청을 하여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쉬는 동안에 여성 신학자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여성 신학자 12명이 핵심멤버가 되어 시작한 것이 여성교회다. 올 10월이면 20주년이 된다.
“여성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는 양성평등의 방향으로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은 여성의 인권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어요. 여성의 인권이 여전히 억압받고 있기 때문이죠. 제도는 운동으로 바뀌어졌지만, 의식은 교육으로 바꾸어가야 해요.”
그도 여성신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여성은 순종해야 하고 남성에 의존해서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 잘 하기 위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때부터 여성의 눈으로 다른 여성의 삶을 보게 되었다. 홀로 서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혼자서도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며 역사적 존재로서 책임을 느끼게 된 것. 여성교회가 지향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여성이 역사의식을 갖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자는 것.
씨알여성
그는 여성이야말로 ‘씨알 중의 씨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씨알을 민중이라는 말로 바꾸어 쓰기도 하지만 씨알은 민중보다 훨씬 존재론적인 의미가 강하다. 씨알 생명의 근원으로서 계속 성장하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이 주신 난 대로, 그대로의 모습이 씨알이다. 함 선생은 ‘알’에서 ‘ㅏ’를 꼭 ‘·’로 쓰도록 했다. ‘ㅇ’은 하늘, 영원을, ‘·’는 소우주인 나를 의미하고, ‘ㄹ’은 ‘행동하는 것’이며 삶으로 나타난다. 여성을 옹근 씨알로 만드는 일, 그것이 씨알여성회의 사명이다.
“폭력당하는 여성을 지지해주고 사회로 환원하여 정체성을 갖고 살게 해주고 싶었어요. 여성학 책을 읽고 토론회를 통해 의식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죠. 상담 교육을 할 때 약 30%는 여성학을 강의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교육을 통해 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함이죠.”
씨알여성회가 자리하고 있는 광주 지역은 결혼이민자가 많다. 2006년부터 관심을 갖고 일을 추진하다가 2007년 성명옥 박사가 결혼이민자지원센터 소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들 중 가정문제가 심각한 경우가 많아요. 사랑으로 맺어진 게 아니고 서로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죠. 센터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좋은 환경에 있는 편이에요. 바깥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해요.”
결혼이민자들은 이주노동자와 다르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이 끝나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결혼이민자들은 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할 우리 이웃이라는 것. 이들을 주류사회로 끌어들여 통합 사회로 가야 하는 이유다.


헌신과 열정
지금까지 만나온 인생의 스승들을 보면 헌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영혼이 맑고 헌신과 열정이 있었다. 돈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있으며, 삶에 이바지하느냐를 생각하고 신앙고백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이 시대의 신앙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헌신이다.
물질주의에 깊이 물든 영성으로 인해, 영혼이 성장하면서 깊이를 주고 가슴을 때리는 감동이 드물다.
“모든 게 생명과 연결되어야 해요. 자연도 우리 공동체라는 인식이 필요한 거죠. 다행인 것은 근래에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여성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에요. 남성들은 여성들만큼 생명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해요.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소외되고 눌린 자의 눈으로 보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눌려왔어요. 새롭게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어려워요. 자기 성찰을 통해 비판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씨알 여성들을 좀 더 많이 배출하고 싶다고 했다. ‘옹근 씨알’로서 정체성을 찾아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하나 소망이 있다. 함석헌 선생 책읽기 독서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씨알여성회’ 이름으로 활동을 해왔지만 ‘여성’이라는 관점이 더 시급한 과제였던 탓에 씨알사상을 널리 알리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했을 따름이다. 함석헌 선생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씨알이야말로 역사의 주체자라는 것, 여성이 역사의 주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고 싶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독서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곽라분이 선생은 씨알여성회 대표로서 10년만 일하다가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불과 3년. 지난해 연말 대체의학을 배우면서 삭발을 해 헤어스타일이 단발머리에서 커트 머리로 바뀌었다. 한층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씨알여성회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여성들을 대변해온 그 동안의 활동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정하는 대표적인 여성인권단체가 되었다. 그 밑거름이 되어온 선생. 씨알 중의 씨알이라고 믿는 여성들을 위한 그의 노력은 여성의 세기, 생명의 세기에 한층 빛을 더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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