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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피해" vs "적반하장".. 무고와 성범죄 사이(언론보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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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
내용
세계일보

[밀착취재] "애꿎은 피해" vs "적반하장".. 무고와 성범죄 사이

이창수 기자 입력 2017.04.03. 15:52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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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천 사건은) 한 명의 가해자와 네 명의 성폭행 피해자가 있었지만 가해자는 무혐의가 되고 피해자는 거꾸로 기소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을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결과다.”(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고진달래 활동가)

“예나 지금이나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무고 가해자가 되는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 유독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무고죄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348개 여성단체로 이뤄진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3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OO 사건은 명백한 성폭행 사건”이라며 “무고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역고소 당한 피해여성에 대한 법원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한다”며 성명을 발표했다.

공대위는 “해당 연예인과 소속사의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로 사실이 왜곡됐고, 수사기관이 가해자의 일방주장으로 무고죄에 집중해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확산됐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피해자가 적극적인 저항이 어려웠던 유흥업소 종사자란 점을 들어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왜 자꾸 무고 가해자가 되는가”

지난해 8월 꾸려진 공대위는 그동안 이 사건과 관련해 “아직 법원의 판결이 나지 않았는데도 성폭행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 가해자가 된 꼴”이라며 “피해자의 가해자 즉각전환은 매우 큰 문제”라며 비판했다. 또 “이 같은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두려움 탓에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6월 4명의 여성이 박씨를 성폭행 혐의로 잇따라 고소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하고, 박씨 측에 역으로 고소당한 첫번째와 두번째 고소인 2명을 무고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에 여성단체 등은 “이 같은 사건 처리는 성폭행 피해자를 오히려 무고죄로 뒤집어 씌워 법망을 빠져나가는 수법의 본보기 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성계에서는 여타 성폭행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고 있다”며 비슷한 주장을 해왔는데, 이는 검찰수사의 관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70조에 따르면 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의 처분을 하는 경우에는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무고혐의 유·무에 대해 판단하도록 돼있다. 수사기관은 지침상 성폭행 수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고소인의 ‘무고’ 가능성 역시 살펴야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일종의 ‘성폭력 피해자 전형’을 상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데, 이때 유흥업소 종사 경력이나 전과, 사건 이후의 피해자 행동 등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계에선 구조적으로 검사나 수사관 등 개인의 잣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이날 공대위도 “연예인, 업소 손님이란 지위가 위력으로 작동한 사건”이라며 “검찰이 유흥업소 종사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진술을 의심하고 저항이 부족했단 점을 들어 ‘동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법원의 최종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무고 가해자’인 것처럼 보도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4일 첫 재판을 앞둔 두번째 고소여성의 경우, 앞서 법원이 “현재까지 수사된 상황에서 구속의 필요성이 상당히 낮다”며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했음에도 영장청구서를 바탕으로 무고 가해자로 몰리는 보도가 양산됐다는 것이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재판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인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2차피해’를 키우는 것”이라며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가 ‘무죄’란 의미가 아님에도 우리사회에선 무죄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꿎은 피해자도…” 무고와 성범죄 사이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고로 성폭행 사건에 연루돼 애꿎은 피해를 입거나 이로인한 ‘주홍글씨’로 일상이 파괴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법원은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혐의 처분으로 풀려난 30대 남성이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남성은 2010년 당시 국립대학교 교직원 채용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일면식도 없던 16세 소녀가 성폭행범으로 지목하면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무죄가 밝혀졌지만 학교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고한 청소년의 진술이 비교적 구체적이었고, 조사 과정에 참여한 전문가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고 보고했다”며 “이 사건을 수사한 수사기관의 판단이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의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무속인이 배후에서 조종해 “남편과 친인척 등 44명이 자신과 두 아들을 성폭행했다”며 허위신고한 이른바 ‘세모자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최초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아버지 허씨에 대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격살인’에 가까운 비난이 이어졌지만, 수사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최근 무고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45·여)씨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이씨가 무고하도록 교사한 혐의 등으로 함께 기소된 무속인 김모(59·여)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특히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사의 경우엔 사실관계를 떠나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치명타를 입어 직·간접적 피해를 입기도 한다.

무고죄에 대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성폭행 사건 대부분이 내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탓에 수사실무에서 피해 신고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수사기관에서 기본적으로 성폭행 피해주장 여성의 입장에서 수사하게 돼 있는 점, 여성과 달리 가해자로 몰린 남성을 지원하는 단체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강조하기도 한다.

◆“성폭행 피해자 편견 없애고 명확한 기준 마련해야”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 외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수사 일선에서는 “성범죄 유형이 워낙 다양해 무고와 성범죄를 단칼에 나누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원의 잣대가 높아지면서 검찰의 성범죄 사건 기소율도 2012년 43.9%에서 2015년 35.8%로 낮아지는 등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입증이 쉽지 않은 문제란 것이다.

다만 성폭력 범죄가 매년 2만건 이상 발생하는 데다 신체·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 수사실무자 상당수가 남성인 점 등을 감안하면 수사기관의 ‘젠더 감수성’이 높아져야 한단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수사가 기본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피해자의 ‘항거불능 여부’나 ‘행실’ 등을 근거로 성폭행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허민숙 연구교수는 “선진국에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성폭행 상황에서 오히려 ‘저항을 하지 말라’고 교육하기도 한다”며 “성행위가 이뤄졌다면 저항여부, 상해여부 등에 매몰되기보다는 외국처럼 가해자에게 ‘어떻게 동의를 얻었는가’를 추궁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또 “성폭행 수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가 무고 가해자로 둔갑하는 수사관행을 탈피해야 한다”며 “편견과 짐작이 아닌 과학수사 등을 바탕으로 얻은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수사를 해야 애꿎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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