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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한 폭력, 거리낌 없이 부추기는 정치집단들 규탄한다!
지난 4월 1일, 귀가하던 여성이 납치 후 성폭행, 살인을 당한 것도 모자라 시신을 훼손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더 끔찍한 것은 이에 대한 경찰대응이 적절하지도, 신속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모르는 사람에 의해, 늦은 시간에,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해야” 성폭력으로 확실하게 인정받는 이 사회의 성폭력 통념에 부합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결국 피해자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치다 못해 온몸이 떨린다. 가해자와 아는 사이였다는 이유로, 충분히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재판으로 대변되는 공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의심당하면서, 2차, 3차 피해를 당하는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이 상황이 더욱 분노스럽다.
한편,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서 본회에서 언론보도만을 집계해서 발표한 여성폭력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숫자는 지난 3년간 209명이다. 미수를 포함하면 299명, 주변 가족 등 피해자까지 포함하면 347명이다. 경악스럽다는 말도 부족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는 최소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살해당하고 있는지 현황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국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성폭력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기는커녕, 마치 여성에 대한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여성폭력 피해자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끊임없이 피해 당사자에게 범죄사실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국가, 이에 대한 예방대책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이 국가, 지속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는 이 국가에서 여성은 설 자리가 없다. 아니, 살 수가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일진데, 여성은 대체 국민이 아니라는 말인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폭력 처벌에 관대한 사회적 태도, 폭력을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하는 통념 등이 바뀌지 않을 때, 그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교묘하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내면화된 폭력허용적 태도, 가부장적 의식을 바꾸지 않는 한, 여성폭력근절은 요원하다.
일상에 난무하는 성희롱적 발언은 넘어갈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하고,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사회가 책임지고 공분해야 하는 문제로 삼으면서, 그리고 때로는 그마저 눈을 감으면서, 끊임없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심각한’ 폭력과 ‘사소한’ 폭력으로 구분하는 것은 여성폭력에 대한 본질을 희석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이번 19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여성폭력에 대한 공약이 거의 없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선언 정도로 들어간 것은 앞으로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공천에 있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여성인권을 유린한 과거가 있는 자들을 후보로 내세운 것과 선거운동과정에서 그러한 행적이 드러났을 때 침묵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문제적이다.
‘성상납’,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보들을 그대로 공천한 새누리당이나, 아무런 검증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공천한 후보가 인권침해·성폭력적 발언을 한 행적이 드러났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이나, 성폭력적 발언을 한 후보에게 여전히 ‘신뢰’를 보내는 통합진보당이나 여성폭력에 대한 저급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입법하고, 국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에 그 중요성과 책임감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 따라서 국회의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질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질에 대한 시비가 붙은 후보에 대해 정권유지나 정권교체를 이유로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각 정당들은 사실상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조하고 조장하고 있다. 다만, 자기 당 후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당 후보에 대해서는 헐뜯기를 일삼고 있는데, 이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뭐라 하는 격”에 불과한 것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인권은 경합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저마다 다른 인권들이 보장될 때, 각자의 인권도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가 “정권창출”이라는 소위 “큰 싸움”이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행태를 빌미로 후보를 비판하는 것이 침소봉대라며 비난하거나, 맥락 없이 원칙만 주장하여 진영을 분열시킨다거나, 혹은 민주주의의 후퇴에 앞장서는 것인 양 보는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문제는 선거 이후이다. 이러한 자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이들이 과연 인권의 가치를 알고 이를 수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겠는가. 이들이 여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얼마나 귀 기울여 듣겠으며, 해결하려고 노력하겠는가.
그 이전에, 인간적 신뢰를 가지고 묻고 싶다.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면 자신의 과오를 숨기거나 해결하지 않은 채, 누구를 대표할 수 있으며, 국정의 잘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투표는 이제 닷새 앞이다. 정당들은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문제가 있는 후보를 감싸서 한두 석을 더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출당 조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이제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문제가 된 후보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본인들이 국민을 대표하여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본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에게는 어떤 영예로운 일이 될지 모르나, 자질 상, 본인들이 생각하거나 공약한 만큼 의원직을 수행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6일
한국여성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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