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대 의대생들 면죄부 받나

서울 성북경찰서가 14일 같은 과 동기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한 고려대 의대 본과 4학년 한모(24)씨 등 3명에 대해 특수강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힌 가운데 고려대 측의 무사 안일한 사후 대처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의대 측이 피해자가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접수를 한 지 5일이 지나서야 사건을 안 것으로 확인된 것.

13일 고려대 의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상벌위원회를 열고 징계 여부와 수위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고만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의과대학에선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사건이 접수된 지 5일 후인 27일 ‘비공식적’인 경로로 사건을 알게 됐으며 늦게 알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원래 공식적인 절차는 양성평등센터에서 학교 쪽으로 보고돼야 하는데 이번엔 이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이미혜 고려대 양성평등센터장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이 센터장은 “사건이 접수되면 사안의 성격에 따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다한다. 가령, 당장 논문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가해자 중 논문심사 관계자가 있다면 학교에 바로 알려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칙은 정해져 있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찍어내듯 똑같이 하나의 공정처럼 절차를 정해놓고 있지 않다”며 “모든 사안에 대해 반드시 학교 측에 알릴 필요가 없다. 더구나 성폭력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의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대 측은 현재 본과 4학년인 가해자들은 병원 실습에 참여해야 하지만 논의 끝에 실습은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사 국가고시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출교’ 조치가 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조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까지 나서 “학교 측이 가해자들을 출교 조치하는 것이 사회적 물의에 대한 기본적인 반성이자 대학의 사명”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상벌위원회 논의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학생 상벌에 관한 시행세칙’에는 “성폭력 사건 등으로 학교의 품위를 손상한 경우 해당 학과 부학장 등이 상벌위원회를 구성해 징계 여부와 수위를 논의하고 총장에게 결과를 제의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번 사건에 더해 고대는 지난해 7월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재임용에서 탈락한 K교수에 대해 최근 재임용 거부 취소 결정을 내렸다. 문제의 K교수는 곧 복직을 앞두고 있어 이래저래 학교 측은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예비 의사’의 성범죄와 학교 측의 가해자 중심 대처에 깊은 실망감을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 ▲피해자의 인권과 학습권을 우선 반영한 징계 ▲각 대학 의대의 의료윤리 교육 과정에 반성폭력 교육 의무화 ▲성폭력 가해 의사의 면허 취소를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