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와 여성시민사회 243개 단체가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관 앞에서 형법 297조 강간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현행 형법은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강간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성폭력으로 접수된 사례 대다수는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는 25일 전국의 성폭력상담소 119곳에 지난해 접수된 강간 사건 4765건을 분석한 결과,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 강간이 이뤄진 비율이 62.5%(2979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반면,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강간 비율은 20.7%(984건)에 그쳤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서도 ‘성추행 피해 당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답한 여성 응답자 비율은 각각 2.7%, 7.1%에 불과했다. 현행 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과는 달리,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도 다수의 강간 범죄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통계로 입증된 셈이다.
폭행·협박이 없는 상황에서 강간 피해가 발생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가해자의 회유’(21.5%)가 꼽혔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숙식 또는 금전을 제공하면서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커피 한 잔 하자’고 유인해 성폭행을 저지른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가해자의 ‘강요’에 의해 강간이 이뤄졌다는 답변(18.1%)이 그 뒤를 이어 많았다.
전성협은 또 경찰(불송치 571건)과 검찰(불기소 197건)이 어떤 이유로 가해자의 성폭력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는지도 분석했는데, 두 곳 수사기관 모두 ‘폭행·협박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각각 19.3%(사유는 복수 일 수 있음, 2위), 17.0%(3위)로 주요하게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자발적 만남으로 해석됨’ ‘피해 이후 메시지를 주고 받음’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등의 이유를 들어, 폭행·협박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전성협은 전했다.
나무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장은 “(수사기관이)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기보다 극심한 저항 유무나 ‘피해자다움’으로 폭행·협박 여부를 유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와 243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잇따라 열어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꿔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했다.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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